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정원의 안개 속에서, 로시후는 정신없이 베일로르를 품에 안았다. 신의 피를 머금은 그의 눈은 이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창백한 안색을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베일로르, 눈 떠! 대체 왜 내 업보와 살의까지 당신이 가져가는 건데!" 그의 절규에도 베일로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타고 올라온 보랏빛 멍울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그녀의 신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남자가 벤 자들의 원한과 비명을 직접 집어삼킨 신의 그릇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그때, 정원 너머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공작저에서 비명이 들렸다!" "성녀님을 찾아라! 반역자 로시후가 성녀님을 납치했다!" 대사제 요한의 목소리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전 기사단과 황실 근위대를 이끌고 정원을 포위해오고 있었다. 로시후를 구원하려던 베일로르의 오만한 자비가, 요한에게는 로시후를 '성녀 납치범'이자 '반역자'로 몰아세울 철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치졸한 놈들..." 로시후가 이를 갈며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의 베일로르를 데리고 저 거대한 병력과 정면으로 맞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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